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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가 머무는 진천문학관

독도상설전시관

기획의도

동해의 푸른 바다에서 대한민국의 아침을 열어주는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상 우리나라 땅이다. 독도는 울릉도와 제주도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바다 위에서 보면 월드컵 경기장 2개 정도인 187,453m² 면적의 작은 바위섬으로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 동남 해안연민들은 가시거리에 있는 울릉도와 독도를 예나 지금이나 삶의 터전으로 삼아 왔다.

대륙진출의 염원을 가진 섬나라 일본은 전략적 요충지였던 울릉도⋅독도에 대해 끊임없이 침략의 야욕을 보였다. 러일전쟁의 전략적 차원에서 독도를 몰래 불법적으로 편인한 일본은 결국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평화의 섬, 우리 땅 독도'를 강점하면서 독도의 가제(강치)를 멸종시켰으며, 해방 후 미군의 폭격지로 획책하여 독도를 훼손하기까지 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독도는 우리 영토로 되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도를 자신들의 고유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다면서 대내외적 홍보와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2014년 1월 28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 개정을 발표하였다. 2008⋅2009년의 경우 중⋅고등학교 지리에만 한정한 독도 관련 내용이 중학교 역사와 공민까지 확대되었고, 고등학교 일본사, 현대사회, 정치경제까지 확대되었다. 또 4월 4일, 일본 문부과학성에 의해 검정 통과된 초등학교 5, 6학년용 사회 교과서에 모두 "일본 고유 영토인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령했다."고 기술하였다.

일본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의 독도 교육의 허구성을 밝혀내기 위해 '평화의 섬, 우리 땅 독도' 전시회를 기획하였다. 이 전시회를 통해 '독도가 역사⋅지리⋅국제법적으로 명백한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일본과 국제사회에 자신있게 설명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상설전시관을 기획하여 만들었다.

아름다운 우리섬, 독도

독도는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해의 최동단에 위치한 섬이다. 독도는 제주도와 울릉도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450만년~250만년 사이에 생성된 독도는 오랜 침식작용과 풍화작용으로 인해 토양이 거의 없는 바위섬으로 남았다. 독도의 원래 이름은 우산도이지만 바위로 이루어진 독도를 '돌섬'의 의미를 지닌 '독섬'이라 불렀다.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할 때 '돌/독(石)'을 뜻으로 새길때는 '석(石)'으로, 음으로 새길 때는 '독(獨)'으로 하였다. 공문서인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서는 뜻으로 새겨 '석도(石島)'라고 하였고, 일반 사람들은 소리 나는 대로 '독도(獨島)'라고 썼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외 89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돌섬에 불과하지만 괭이갈매기, 바다제비 등 바닷새의 천국이며, 아름다운 야생화와 나무들이 시절을 따라 꽃을 피우고 푸름을 더해왔다. 그 바위섬, 독도에 드나들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나무를 가져다 심고, 식수를 발견하여 '물골'을 정비하고, 주민 숙소까지 만들었다. 그런 노력으로 인해 독도는 한갓 바위가 아닌 우리 민족의 삶의 숨결이 스민 '평화의 섬, 우리 땅 독도'로 온전히 서게 되었다.

우리의 소중한 영토, 독도

지리적으로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의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한 기록에서도 확인되듯이 독도는 울릉도와 역사적, 문학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서쪽 섬인 오키섬에서 독도를 볼 수 없다.

역사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은『삼국사기』(1145년),『조선왕조실록』등 다수의 옛 문헌과 지도에서 확인되고 있다.『만기요람』(1808년)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의 영토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과거 일본 정부도 독도가 우리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1877년 3월 당시 일본의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은 "울릉도 외 1도(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분명히 지시하였다.

국제법적으로

1900년 10월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를 공포하여 울릉군수가 독도를 관할할 것을 확고히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탈취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는 카이로선언(1943년)에 따라 독도는 당연히 대한민국 영토로 회복되었다. 또한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677호에 따라 독도는 통치 및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은 이러한 연합국의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이다"

일본 교과서의 잘못된 독도교육 비판

일본은 학교 교육 현장에서 17세기 중엽인 에도시대부터 독도 영유권을 확립하였고, 1905년 2월 22일의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국제법으로 재확인한 고유영토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이 불법 점거한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기고자 한다. 그렇지만 일본 교과서에서 에도막부와 메이지정부가 독도를 우리나라 딸이라고 한 자료를 전혀 싣지 않고 있다. 이들 자료를 통해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상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알 수 있으므로, 국제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고지도에 나타난 독도

동해에 위치한 을릉도와 독도는 고문서 외에도 팔도총도를 비롯하여 여러 고지도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일본이나 서양에서 제작한 고지도에도 마찬가지이다.

독도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양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독도를 우산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렀다. 일본의 고지도에는 독도가 마쓰시마(松島), 다케시마(竹島) 등으로 표기되었다. 서양의 고지도에는 Tchian-chanto, pancourt Rocks, Hornet Rocks, Menelai와 Olivutsa 등으로 표기되었다.

독도와 관련하여 고지도에서 주목할 사항은 첫째, 일본 스스로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1905년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다수의 한국지도에는 독도가 한국령으로 표시되어 있고, 또 독도가 한반도와 동일한 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전도, 시마네현전도, 오키도 등에서는 독도를 자국의 영토에서 제외하였다. 둘째, 서양의 고지도에도 독도가 한국령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프랑스 왕실 지리학자 당빌이 18세기에 제작한 조선왕국전도, 1895년 러시아 해군부 수로국이 제작한 조선동해안도 등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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